작성자 황경찬
AI 시대, 다시 설계해야 하는 것은 회사다
부서, 직급, 관리자, 보고와 결재는 원래부터 당연한 것이 아니라 정보가 느리고 전문성이 사람에게 묶여 있던 시대의 해법이었습니다. AI가 그 제약을 하나씩 없애는 지금, 물어야 할 것은 몇 명을 줄일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AI는 지식노동만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문서 작성, 데이터 분석, 코딩, 보고서 작성, 회의 정리와 일정 조정까지 AI가 대신하는 범위가 최근 1~2년 사이 빠르게 넓어졌습니다. 그래서 논의는 대개 어떤 직무가 사라지는가, 몇 명이 줄어드는가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이 논의는 한 단계 앞에서 멈춰 있습니다. 문서, 분석, 보고, 조정은 그 자체가 목적인 일이 아닙니다. 회사가 운영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정보를 옮기고, 판단을 모으고, 결정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즉, 지금 자동화되고 있는 것은 회사의 구조를 지탱해 온 노동입니다. 그 노동이 사라지면 달라지는 것은 일자리 수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전제로 설계된 회사의 구조입니다. 이 글은 그래서 다음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과거의 제약이 사라진 뒤에도, 회사는 왜 지금의 모습이어야 하는가.
지금의 회사는 과거 제약에 대한 해법이었습니다
부서와 직급, 관리자, 정규직 고용, 보고와 결재, 회의, 사무실은 어느 회사에나 있어서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장치들은 회사가 처음부터 갖고 있던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씩 추가된 것입니다.
회사가 사람을 대규모로 조직해야 했던 이유는 다섯 가지로 정리됩니다.
- 정보가 느리고 비쌌습니다 — 현장 상황을 아는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이 달랐고, 그 사이를 사람이 직접 옮겨야 했습니다.
- 전문성이 사람에게 귀속돼 있었습니다 — 회계, 법무, 설계 지식을 쓰려면 그 지식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야 했습니다.
- 복잡한 일을 나눠야 했습니다 — 한 사람이 전체를 다룰 수 없으니 분업했고, 나눈 일을 다시 합치는 일이 새로 생겼습니다.
- 사람 사이 조정 비용이 컸습니다 — 나눈 일이 어긋나지 않도록 누군가 지속적으로 맞춰야 했습니다.
- 자본, 자산, 위험, 책임을 한곳에 유지해야 했습니다 —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자본과 책임을 한 법인 안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했습니다.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는 1937년에 왜 모든 거래를 시장에서 하지 않고 회사를 만드는가라고 물었고, 시장에서 매번 사람을 찾고 계약하는 비용보다 조직 안에서 지시하고 조정하는 비용이 쌌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위 다섯 가지 제약이 모두 시장 거래의 비용을 키우는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약마다 대응하는 장치가 생겼습니다. 전문성이 사람에게 묶여 있으니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부서로 모았고, 정보가 느리니 위아래로 전달하는 계층을 만들었으며, 조정이 어려우니 관리자를 두었습니다. 통제하려면 보고, 평가, 결재가 필요했고, 능력을 확보하려면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했으며, 협업하려면 같은 시간에 같은 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해야 했습니다.
flowchart LR
H1["과거의 제약"] ~~~ H2["회사가 만든 장치"]
C1["전문성이 사람에게<br/>귀속돼 있었다"] --> D1["부서<br/>같은 전문성을 가진<br/>사람을 모은다"]
C2["정보가 느리고 비쌌다"] --> D2["계층<br/>정보를 위아래로 전달한다"]
C3["사람 사이<br/>조정 비용이 컸다"] --> D3["관리자<br/>나눈 일을 맞춘다"]
C4["통제가 필요했다"] --> D4["보고 · 평가 · 결재"]
C5["능력을 확보해야 했다"] --> D5["정규직 고용"]
C6["협업하려면<br/>모여야 했다"] --> D6["사무실과 회의<br/>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br/>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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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지금의 회사는 과거의 제약을 해결하기 위해 진화한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좋은지 나쁜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특정 제약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산업마다 조직해야 했던 것은 달랐습니다
제약은 같아도 회사가 한곳에 모아야 했던 자원은 산업마다 달랐습니다. 제조업은 설비와 공정과 노동을 한 공장에 모아야 했고, 은행은 자본과 신용과 위험을 신뢰 위에서 관리해야 했습니다. 보험은 많은 사람의 위험을 한데 모아 장기 계약으로 유지해야 했고, IT 기업은 지식과 기술을 제품으로 만들어야 했으며, 컨설팅은 전문성과 고객 관계를 사람 안에 축적해야 했습니다.
| 산업 | 한곳에 모아야 했던 자원 |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 맡은 조정 |
|---|---|---|
| 제조업 | 설비, 공정, 노동 | 공장 단위로 공정과 인력을 배치 |
| 은행 | 자본, 신용, 위험, 신뢰 | 심사와 승인 계층으로 위험을 관리 |
| 보험 | 위험 풀링, 장기 계약 | 계약 심사와 지급 판단을 담당 조직이 수행 |
| IT | 지식, 기술, 제품 | 개발 조직이 지식을 제품으로 통합 |
| 컨설팅 | 전문성, 고객 관계 | 파트너와 팀 구조로 전문성과 관계를 축적 |
산업마다 모으는 대상은 달랐지만, 조정하는 방법은 모두 같았습니다. 어느 산업이든 이 자원들을 조정하는 주체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었고, 그래서 어느 산업이든 부서, 계층, 관리자, 보고라는 같은 장치를 가졌습니다. 은행과 제조업의 조직도가 서로 비슷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AI는 이 제약을 하나씩 제거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정리한 제약을 하나씩 다시 보겠습니다.
- 정보 탐색 비용 — 현장 데이터와 문서를 AI가 즉시 읽고 요약합니다. 정보를 위아래로 옮기기 위한 계층의 근거가 약해집니다.
- 전문지식 접근 비용 — 회계, 법무, 코딩 지식을 AI 모델이 제공합니다. 지식을 쓰기 위해 그 지식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야 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 문서화와 분석 비용 — 보고서와 분석 자료를 AI가 생성합니다. 보고를 만드는 데 드는 사람의 시간이 사라집니다.
- 반복 판단 — 규칙이 있는 판단은 AI 에이전트가 수행합니다. 관리자가 하던 일 중 일상적 승인과 검토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 조직 내 전달과 조정 — 나눈 일을 다시 합치고 어긋남을 맞추는 일을 AI가 맡습니다. 조정을 위한 회의와 관리자의 근거가 약해집니다.
이 다섯 가지를 합치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이 더 이상 인간 개인에게만 귀속되지 않습니다. 회계 지식도, 분석 방법도, 업무 절차도 사람이 아니라 Skill과 Workflow의 형태로 조직이 보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 과거의 제약 | 대응하는 조직 장치 | AI 이후 | 근거 |
|---|---|---|---|
| 정보가 느리고 비쌌다 | 계층 | 크게 줄어듦 | AI가 현장 데이터와 문서를 즉시 읽고 요약 |
| 전문성이 사람에게 귀속 | 부서, 정규직 고용 | 크게 줄어듦 | 회계, 법무, 코딩 지식을 AI 모델이 제공 |
| 문서화와 분석 비용 | 보고, 평가 | 크게 줄어듦 | 보고서와 분석을 AI가 생성 |
| 반복 판단 | 결재, 관리자의 일상 승인 | 일부 줄어듦 | 규칙 있는 판단은 AI 에이전트, 예외는 사람 |
| 사람 사이 조정 | 관리자, 회의 | 일부 줄어듦 | 나눈 일의 통합은 AI, 방향 설정은 사람 |
| 자본, 위험, 책임 유지 | 법인, 경영진, 책임 구조 | 그대로 남음 | 책임 주체는 여전히 사람과 법인 |
다만 모든 제약이 같은 속도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정보, 지식, 문서, 반복 판단에 관한 제약은 크게 줄고, 자본과 위험과 책임을 한곳에 유지해야 하는 제약은 그대로 남습니다. 회사 구조 중 어디가 바뀌고 어디가 남는지는 이 차이에서 갈립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의 일을 네 가지로 나누면 인간이 남는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 Digital Execution — 화면 안에서 시작해 화면 안에서 끝나는 일입니다. 문서, 분석, 코딩, 보고가 여기에 속하고, 이 영역은 AI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 Physical Execution — 현실 세계에서 몸으로 하는 일입니다. 설비 운영, 시공, 현장 점검, 물류가 여기에 속하고, 로봇이 일부를 대체하더라도 당분간 현실 세계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 Relational Execution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가 가치인 일입니다. 영업, 협상, 고객 신뢰, 팀을 이끄는 일이 여기에 속하고, 상대가 사람이기를 원하는 한 사람이 남습니다.
- Judgment와 Responsibility — 무엇을 할지 정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입니다. AI가 판단 자료를 만들어 주지만, 결정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여전히 사람과 법인입니다.
%%{init: {"flowchart": {"subGraphTitleMargin": {"top": 12, "bottom": 12}}}}%%
flowchart TB
subgraph R2[" "]
direction LR
subgraph JUD["Judgment · Responsibility"]
direction TB
JD1["무엇을 할지 결정 ·<br/>결과에 책임"] --> JD2["책임 주체는<br/>사람과 법인이다"]
end
subgraph PHY["Physical Execution"]
direction TB
PH1["설비 운영 · 시공 ·<br/>현장 점검 · 물류"] --> PH2["현실 세계의<br/>사람이 필요하다"]
end
end
subgraph R1[" "]
direction LR
subgraph REL["Relational Execution"]
direction TB
RL1["영업 · 협상 ·<br/>고객 신뢰 · 팀 리더십"] --> RL2["관계 자체가 가치라서<br/>사람이 남는다"]
end
subgraph DIG["Digital Execution"]
direction TB
DG1["문서 · 분석 · 코딩 · 보고"] --> DG2["AI로 빠르게 이동한다"]
end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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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회사는 Digital Execution을 위해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남은 세 영역에서 사람이 왜 필요한지를 새로 정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핵심은 인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필요한 이유를 다시 정의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몇 명을 줄일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임원 대상 AX 교육에서 자주 받는 질문은 실제로 AI를 쓰면 직원이 줄어드는 결과가 나오는지, 여전히 사람은 필요하지 않은지입니다. 두 질문 모두 기존 조직 구조를 그대로 두고 그 안의 사람 수만 따지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제약이 바뀌었는데 구조를 두고 인원만 조정하면, 남은 사람들이 예전 구조를 유지하는 일을 더 많이 떠맡게 됩니다.
더 좋은 질문은 구조 자체를 향합니다.
- 이 부서는 왜 존재하는가 — 어떤 전문성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전문성은 지금도 사람에게만 있는가
- 이 관리자는 어떤 제약을 해결하고 있는가 — 정보 전달인가, 조정인가, 판단과 책임인가
- 이 보고는 왜 필요한가 — 결정에 쓰이는가, 아니면 정보를 옮기는 일 자체인가
- 이 역할은 정말 인간이 해야 하는가 — AI 에이전트에게 맡겨 보았을 때 무엇이 남는가
- 인간이 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Physical, Relational, Judgment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이 다섯 질문은 부서 단위로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답이 관행이라서로 끝나는 장치가 몇 개인지 세어 보면, 그 부서에서 회사를 다시 설계할 범위가 드러납니다.
AI-native Company는 기존 회사를 자동화한 회사가 아닙니다
지금 대부분의 AX는 기존 조직도를 그대로 두고 AI를 추가합니다. 부서는 그대로 두고 각 부서에 챗봇과 자동화를 넣습니다. 시작으로는 맞는 방식이지만, 앞에서 본 제약이 사라졌는데 그 제약의 해법인 장치만 남기는 결과가 됩니다. 정보를 옮길 필요가 없는데 계층이 남고, 조정을 AI가 하는데 관리자가 조정 회의를 계속하는 식입니다.
AI-native Company는 다릅니다. 기존 회사를 자동화하는 대신 부서, 직급, 프로세스를 제약에서부터 다시 검토합니다.
- Job 중심에서 Mission 중심으로 — 사람을 직무에 배치하는 대신, 달성할 미션에 사람과 AI를 함께 배치합니다.
- Human workforce에서 Human + AI + Machine + Capital로 — 일하는 주체를 사람만으로 세지 않습니다. 사람, AI, 기계, 자본이 함께 일의 단위가 됩니다.
- 관리에서 방향 설정, 판단, 책임으로 — 관리자의 일에서 정보 전달과 조정이 빠지고 방향 설정과 판단과 책임이 남습니다.
- SOP에서 Agent, Skill, Workflow로 — 업무 절차를 사람이 읽는 문서 대신 AI 에이전트가 실행하는 형태로 남깁니다.
%%{init: {"flowchart": {"subGraphTitleMargin": {"top": 12, "bottom": 12}}}}%%
flowchart TB
subgraph OLD["기존 조직도에 AI를 추가한 회사"]
direction LR
O1["부서 · 계층 · 관리자를<br/>그대로 둔다"] --> O2["각 부서에 챗봇과<br/>자동화를 넣는다"] --> O3["제약은 사라졌는데<br/>장치만 남는다<br/>계층이 남고<br/>조정 회의가 계속된다"]
end
subgraph NEW["AI-native Company"]
direction LR
N1["제약에서부터 부서 · 직급 ·<br/>프로세스를 다시 검토한다"] --> N2["Mission 단위로 사람 + AI +<br/>기계 + 자본을 배치한다"] --> N3["관리자는 방향 설정 ·<br/>판단 · 책임을 맡는다"] --> N4["SOP 대신 Agent · Skill ·<br/>Workflow로 절차를 남긴다"]
end
OLD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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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은 일이 아니라 회사입니다
새로운 회사의 기준은 최소 인원이 아니라 불필요한 인간 노동의 최소화입니다. 두 기준은 결과가 다릅니다. 최소 인원을 목표로 하면 남은 사람에게 예전 구조를 유지하는 일이 몰리고, 불필요한 노동의 최소화를 목표로 하면 사람의 시간이 관계, 창조, 책임, 판단으로 옮겨 갑니다. AI가 생산성과 조정을 맡고, 사람은 사람이어야 가치가 커지는 자리에 놓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지식노동의 자동화가 아닙니다. 과거의 기술적 제약 위에서 만들어진 회사라는 제도를 다시 설계할 수 있게 된 순간입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과거의 제약이 사라진 뒤에도, 회사는 왜 지금의 모습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관행이 아닌 이유로 답할 수 있는 장치만 남기는 것이 회사를 다시 설계하는 일의 시작입니다.